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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31 광해
2014. 1. 31. 09:38

광해 Studio/Movie & TV2014. 1. 31. 09:38




경험으로 보나 재주로 보나 빼어난 인물이었으며 그 시대에 최적화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자시절 자신에게 가해

졌던 위협으로 인한 피해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위기간 소중한 시간들이 당쟁과 옥사로 소모되어 버리고 그것이 결국 반정의 원인이 되어버리는 


16년간의 세자생황

-  임란동안 18세의 나이로 분조를 이끌며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모아 임란승리의 주축이 되었던 탁월한 공로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

- 그러나 부왕의 견제와 냉대 그리고 끊임없는 위협



- 15년간의 제위기간

4년간 임란 수습, 왕권 강화


후에 외교문제로 인한 기간을 빼버리면 

대부분 당쟁과 옥사사옥으로 점철된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같은 세대를 초월하는 명재상들이 그를 보위하였지만,,,,,

어릴적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 그리고 19년간의 유배 생활


이제 다시 역사는 반복된다.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 (음력 4월 26일) ~ 1641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1])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은 이(李)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위 옹립에 공이 컸던 대북파의 반발로 당쟁에 휘말리고 말았으며, 이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후 줄곧 인목왕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패륜자로 일컬어져 왔으나, 현대에 들어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전에 폐위되었기에 사후 시호는 없으며 살아있을 때 받은 존호는 체천흥운준덕홍공신성영숙흠문인무서륜입기명성광렬융봉현보무정중희예철장의장헌순정건의수정창도숭업대왕(體天興運俊德弘功神聖英肅欽文仁武敍倫立紀明誠光烈隆奉顯保懋定重熙睿哲莊毅章憲順靖建義守正彰道崇業大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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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no-ani